[이근교수](정동칼럼) 투명성이 항상 좋은것만은 아니다 (경향신문 20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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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정동칼럼] 투명성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한때 각광을 받았던 용어가 있었다. ‘투명성’이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기업의 운영, 정부의 경제정책, 금융산업의 실태 등이 투명하지 않아서 투자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고, 97년 이후 한꺼번에 이들에 대한 투명성이 증가하다보니 투자자들이 방만한 기업과 금융산업의 운영실태를 알게 되고 곧바로 투자를 회수했다. 이러한 일로 인해 투명성의 중요성이 한동안 언론과 학계, 그리고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회자됐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투명성은 신자유주의의 한 원칙인데, 정부와 재벌에 대해서 신뢰를 갖지 못했던 진보개혁진영이 투명성 증가로 정부와 재벌을 통제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가 됐다. 진보개혁진영이 신자유주의자가 되고 친재벌이 돼버리는 모순이 생겨난 계기가 사실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투명성이 꼭 사회의 모든 곳에서 확보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게 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없어지고, 이는 인권침해로 이어지게 된다. 조지 오웰이 쓴 소설 에 나오는 거대한 감시국가 ‘빅 브러더’가 탄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투명성이 확보돼서 곤란한 분야가 정보를 수집, 분석, 제공하는 정보기관의 영역이다. 만약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같은 정보기관이 기업을 투명하게 운영하듯이 투명하게 기관을 운영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국정원이 투명하게 운영된다면 사실상 민감한 정보를 획득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몇 년 전 국정원 직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국정원이 보안을 노출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고, 국정원이 북한 지도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공개하면서 정보원 노출과 관련된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음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양지에 나와서는 안 되는 이유다. 또한 국정원이 획득한 비밀이나 민감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우리의 적대세력이나 경쟁세력이 정보를 악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정보공개와 관련해 국정원의 투명성이 높아져서는 안 된다. 만약 국정원이 특정 정치적 목적으로 이러한 민감한 정보를 공개한다면 이는 국정원에만 제공된 권력의 남용으로 민주주의에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입히게 된다. 따라서 국정원의 투명성은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책임질 수 있는 최고위 인사에게만 적법한 절차에 따라 허용돼야 하고, 이러한 정보는 위정자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만 활용해야 한다.

얼마 전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시에 했다는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 문건을 공개한 것은 이러한 국정원의 투명성 면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다. 우선 정상회담 기록을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이렇게 막 공개하게 되면, 정상들은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발언과 협상을 할 수 없게 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대화도 못하게 된다. 둘째, 국정원이 공개적으로 국내정치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개입한다면 민감한 정보를 획득하고 있는 국정원은 그 의지 여하에 따라 국내정치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청와대 위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는 국정원이 과연 국가정보를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다룰 능력이 있는지에 관해 국민들에게 의구심을 제공했다. 획득한 정보에 대한 국정원의 해석은 논란을 잠재우기보다는 부채질하고 있다. 이러한 국정원의 활동은 대통령의 외교업무 수행에 엄청난 훼손을 가하고 있고, 민주주의를 훼손했으며, 국정원의 정보처리 능력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는 대통령 자신의 국정수행에 큰 짐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정원 문제를 해결하고, 국정원 개혁을 지시해야 한다. 국정원의 권력남용과 업무수행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엄격한 절차와 조건에 따라 문제시되는 부분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