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교수](정동칼럼) 공부와 연구의 차이 (경향신문 201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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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02

[정동칼럼] 공부와 연구의 차이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요즘 한국경제의 화두 중 하나가 창조경제이다. 창조경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고 아직 그 방법론에 대해서 합의가 이뤄진 것 같지 않다. 다만 어렴풋한 합의가 있다면 우리 경제가 이제는 선진국이 앞서서 만든 것을 복사, 복제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우리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창조의 범주에는 개선과 개량을 동반한 복사, 복제 역시 들어갈 터이고, 또 우리가 몰랐던 전혀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창조적이라고 여겨지는 아이폰도 사실은 전화와 컴퓨터의 진화 속에서 융합되면서 탄생된 것이고, 페이스북도 인터넷 활용의 진화 속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창조 과정을 보면, 앞의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존에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서 나만의 영역을 개척해가는 과정이 동반된다. 그렇게 보면 진정 창조적인 것은 앞서 만든 것을 완벽히 마스터하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만든 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미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터이고, 또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제적 성공을 꼭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안전지향적인 사람들은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생각을 하지 말고, 이미 있는 것이나 잘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 이러한 복사, 복제 마인드만을 가지고는 국가가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하겠지만, 결국 시대가 바뀌고, 기존 패러다임에 한계가 올 때 남이 답을 주기만을 기다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서 선도해 나가고 싶은 국민들의 열망은 절대로 충족할 수 없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안전지향적인 보수적 인재에 더해서 과감하게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모험지향적인 창조적 인재를 교육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다. 요즘 시대가 단순히 매뉴얼에 따라 부품을 조립하고 대량으로 생산해서 판매하는 대량생산 시대에서 창조적 지식이 기반이 되는 지식경제 시대로 전환하는바 창조적 인재의 양성은 더더욱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창조적 인재 양성을 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곳은 교육기관이다. 필자도 교육기관에서만 거의 평생을 보낸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요즘 한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접하면서 상당한 당혹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유인즉, 대부분의 학생이 이른바 ‘정답교육’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수업시간이나 토론에서 이미 잘 만들어져 있는 ‘매뉴얼’을 계속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용이 맞거나 틀린 것을 찾아 정답에 동그라미만을 치고자 하지, 기존의 것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을 연구라고 하고 기존에 있는 것을 잘 배우는 것을 공부라고 할 때 한국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들은 연구가 아니라 공부에만 익숙해져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이 연구가 아니라 공부에 치중해 있는 것은 신속한 근대화라는 역사적 필요와 그 부산물인 정형화된 교과과정 및 대학입시에 원인이 있겠지만, 이를 빨리 바로잡지 않으면 한국에서 창조적 인재를 기대하는 일은 시스템이 아니라 운에 맡겨야 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 대학교육부터라도 정답교육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수업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학생이 교수의 강의에 반드시 동의할 필요도 없고, 또 교수도 정답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정답’이 요구되는 기초교육이 있겠지만 이제는 공부에 더해서 연구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학생들에게 배양하는 것이 선생 및 교수의 의무다. 선생 및 교수도 그러한 학생들을 상대하려면 부단한 자기발전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