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교수](시론) 한·일 군사협정과 동북아 (세계일보 20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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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시론] 한·일 군사협정과 동북아  <세계일보>     입력 2012.06.28 21:03:51
         
중국 고전에 ‘원교근공(遠交近攻)’이란 말이 있다. 멀리 있는 나라와 손을 잡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는 전략이다. 굳이 이러한 전략을 세우지 않더라도 이웃 나라끼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가까운 나라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서는 먼 나라뿐만 아니라 가까운 나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원교근교(遠交近交)’가 필요하다.

 일본은 중국과 함께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이다. ‘원교근공’이라는 말에 걸맞은 듯 양국 사이에는 불행한 과거가 적지 않았다. 20세기 초에는 제국주의·식민지라는 최악의 관계를 경험했다. 지금도 독도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웃이다. 중국이라는 강대국을 또 다른 이웃으로 두고 있으며, 아직도 분단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현재나 미래를 위해 한·일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본과의 정보보호 협정 체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첫째,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정보보호 협정 문제를 비공개 안건으로 통과시켰다고 한다. 결코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48년 전에 6·3사태를 경험했다. 당시 불법적인 과정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지만 한국의 발전을 위해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동의하는 바였다. 그러나 한·일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김·오히라 메모가 문제가 됐다. 이로 인해 역사적인 한·일협정 체결은 전 국민적인 박수를 받지 못했다.

둘째, 정보보호 협정이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이 안보에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주장처럼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지난주 한·미·일 공동 해상 훈련을 한 마당에 한·일 간에 군사적 성격의 협정을 체결하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여기에 더해 얼마 전 일본은 ‘원자력 기본법’의 수정으로 핵 무장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1960년대 중반 일본 정부가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소위 미쓰야(三矢) 계획을 폭로한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북한이 다시 남침할 경우 주일미군이 먼저 한반도에 파견되며, 최종 단계에서 미국의 원자탄 투하 이후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주둔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계획이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에 마련됐다는 점에서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쓰야 계획의 폭로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지만 1967년부터 1969년까지 한반도는 최악의 안보위기를 맞이했다.

최악의 상태인 남북관계, 개선되지 않고 있는 북미·북일 관계, 이로 인해 불편해진 한·중관계. 이러한 상황에서 한·일 간의 군사적 성격의 협정이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과거사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한·일 간에 ‘군사적’ 협정을 비공개적으로 체결한다는 것 역시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투명한 처리가 필요하다. 국회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일 간의 협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고려돼야 한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통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해 긴장하고 있는 중국과 미국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중국과 한국은 이웃 사이이다. 현명한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