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 교수](경제시평-김종섭) 몰수(국민일보 20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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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경제시평-김종섭] 몰수 22012.05.06 18:27
  
2주 전 아르헨티나 정부가 자국 내 최대 석유회사인 렙솔 YPF를 스페인으로부터 몰수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스페인은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지난주에는 다시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가 스페인의 전력회사를 국유화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개발도상국 정부가 외국인 회사의 재산을 몰수했다는 뉴스를 몇 년 전부터 종종 들어 왔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2004년 외국 석유기업의 로열티를 기존의 1∼6%에서 20∼30%로 인상하고 공동합작투자 시 베네수엘라 석유공사가 51% 이상의 참여지분을 갖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강화하는 각종 조치를 도입하였다. 베네수엘라는 2007년에 전력과 전기통신 분야 여러 사기업들의 국유화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도 베네수엘라가 외국 석유회사에 취한 조치와 비슷한 조치를 2006년 도입하였다.

자원분야에서 외국인 자산 몰수가 증가한 것은 최근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과 관련이 있다. 석유, 광물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함으로써 몰수로부터 얻는 이득이 증가하자 국제사회의 비난과 외국인 투자자의 철수라는 희생을 무릅쓰고 몰수를 단행하는 것이다. 물론 이득이 크다고 모든 정부가 대규모 몰수를 단행하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낮아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시행하고자 할 때 몰수를 단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몰수라는 것이 항상 직접적으로, 그리고 남들 눈에 띄는 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경우 외국인이 투자하려고 구입한 부지를 갑작스럽게 선인장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건축허가를 취소하여 그동안의 투자에 대한 손실을 입게 했으며, 이란은 외국인 회사에 정부가 지정한 경영자를 고용하게 하여 간접적으로 손실을 입힌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 외에도 투자 유치국의 자의적인 정책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가 피해를 입은 경우는 수없이 많다. 이렇게 정부의 조치로 회사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을 간접 몰수 또는 행정적 몰수라고 한다. 외국인 회사가 투자대상국의 이러한 조치로 피해를 입게 되면 회사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 등에 중재를 요청하여 해결을 모색하게 된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처럼 정부가 의지를 갖고 석유 기업 같은 대규모 기업을 몰수하고자 하면 이를 국제상사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가 어렵다. 어떤 경우는 남아 있는 자산을 지키기 위해 투자자가 현지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아예 중재 요청을 포기하고 타협안을 찾기도 한다. 해당국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인적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몰수 같은 정부조치는 투명한 법적 조치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국가의 모든 투자기업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정부 내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몰수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적어도 남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이라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도 복합 외교, 다채널외교, 민관협력체계 구축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단발성으로 그쳐 체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분산되어 있는 자원을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소규모 인적 네트워크를 개별적으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지되거나 인계되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김종섭 서울대 교수 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