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섭 교수](경제시평-김종섭) 중남미 FTA의 도미노 효과(국민일보 201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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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경제시평-김종섭] 중남미 FTA의 도미노 효과  

자유무역협정(FTA) 민간공동 연구 또는 FTA 관련 세미나를 위해 페루,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등의 국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필자는 단신으로 방문했다. 사실 한국에 비해 이들 국가는 경제규모가 작기 때문에 FTA 타당성 연구를 하거나 협상을 할 때 한국 정부가 그리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며 세인의 주목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는 한국과의 FTA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회의마다 연구에 참여하는 학자들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들까지 10여명이 참석했기 때문에 단신으로 갔던 필자는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FTA 공동연구에 참여하지 못한 국가의 관료들은 개인적으로 그 섭섭함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

왜 이들은 한국과의 FTA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까. 이들이 한국을 자국의 농산물과 광물 등 1차 산품의 좋은 시장으로 생각해서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페루는 2010년 한국에 10억 달러를 수출했고 품목은 주로 구리 커피 오징어 등이었다. 콜롬비아는 같은 해 4억 달러를 수출했고 주된 품목은 커피 철 석탄 등이었다.

이러한 규모는 한국에는 별로 크지 않은 액수라고 할 수 있지만 총 수출이 각각 300억 달러 정도 되는 이들 국가에는 중요한 금액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광물에 부과되는 관세는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FTA로 인해 관세가 철폐된다고 해도 이들 국가의 수출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이들 나라에서 비교적 높은 관세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FTA로부터 얻는 혜택이 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가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장성이다. 최근 중남미 국가들의 주요 수출품인 1차 산품의 수요가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FTA를 통해서 안정적인 시장을 선점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동시에 수출증대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요 대상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FTA에 대한 일종의 도미노 효과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한 나라가 한국과 FTA를 체결하면 한국에 대한 수출이 증가해 자국에는 이득이 되지만 비슷한 품목을 수출하는 옆 나라의 수출을 감소시켜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FTA를 먼저 체결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시장을 빼앗긴 옆 나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슷한 FTA 체결을 추진하게 된다.

이러한 도미노 효과는 같은 시장을 갖고 경쟁하는 국가들에는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경쟁 격화로 FTA로부터의 혜택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국가들이 한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할 때 한국으로서는 훨씬 많은 혜택이 돌아온다고 할 수 있다. 더 좋은 조건으로 FTA를 체결할 수도 있고 FTA를 체결하고 나서도 더 낮은 가격으로 수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러 국가와 FTA를 추진하면서 매우 좋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좋은 위치는 남보다 먼저 FTA를 추구함으로써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FTA 후발 주자였던 한국이 이제는 남보다 먼저 그리고 남보다 많은 국가와 FTA를 체결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종섭(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