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희 교수]“50여년 집권 日자민당 몰락 이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도 주목(서울신문 20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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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50여년 집권 日자민당 몰락 이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도 주목해야”
박철희교수 저서 ‘자민당 정권과 전후 체제의 변용’

 

결국 ‘포괄정당’과 ‘국회대책정치’다. 서구식 용어를 쓴다면 국민정당과 합의 정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써낸 ‘자민당 정권과 전후 체제의 변용’(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의 결론이다. 일본 하면 한국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말들이 있다. ‘보수우경화’, ‘우익의 발흥’, ‘군국주의화’, ‘군사대국화’ 같은 단어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존재가 50년 넘게 집권한 자민당이다.
 
 
‘일제’라는 이미지 때문에, 과거사 문제 때문에 일본을, 자민당을, 그 자민당을 줄곧 지지해온 일본 국민을 한 덩어리로 파악하는 게 보통 한국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런데 박 교수는 이런 ‘일본 일원론’, ‘일본 불변론’이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전후 일본, 그것도 자민당 내 파벌 싸움을 들여다보면 일원적이고 불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출발점은 요시다 시게루(1878~1967)다. 한국에서 요시다란 인물은 전후 총리 자리를 차고 앉아 일본 보수주의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그러나 요시다는 보수에 뿌리박되 군국주의로 치닫으려 한 급진 보수를 경계한 인물이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전후 일본의 재무장을 막아냈다는 점이다.


미·소 대립 격화, 중국 공산화, 한국전쟁 발발 등의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미국은 자유진영의 전진기지로서 일본을 재무장시키려 들었다. 일본 보수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이참에 재무장해서 한국전에 참전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안팎의 공세를 거부한 사람이 요시다 총리다. 평화주의의 토대 위에 경제성장에 매진하자는 것이 요시다의 논리였다.


이후 일본 보수주의 정치, 자민당 정치는 요시다 노선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서 판가름난다. 박 교수는 몇 차례 위기 혹은 도전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아무도 이를 뒤집지 못했다고 보는 쪽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자민당이 허약해서다.


안으로는 파벌경쟁, 밖으로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그 와중에 자민당이라는 틀을 유지하고 그 안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인기 있는 정책을 가져다 써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당·공산당이 주장하는 진보적 정책까지 흡수해 버린 것이다. 때로는 자기 파괴적으로 분열된 것이 자민당의 파벌이었지만 “확대지향적 경쟁을 벌임으로써 야당의 입지마저 빼앗아 가는 권력 지향성을 보여 줬다.”고 평가하는 대목이다. 이 영향은 혁신계의 위축으로도 나타났다. “자신의 무기를 빼앗긴 혁신계는 사회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 대신 외교·안보 노선에 대한 비판에만 집중했고, 이런 경향이 지속되다 보니 사실상 자민당에 대한 견제자 역할에 자족하는 양상”까지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게 압도적이던 자민당이 왜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내줘야 했을까. 박 교수는 성공 요인을 뒤집어 보면 알 수 있다고 본다. 냉전 붕괴 뒤 사회당·공산당이 몰락했고, 자민당이 요시다 노선으로 대표되는 온건보수 대신 급진보수 쪽으로 기울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생존에 대한 강한 갈증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 교수는 “예전 자민당 위기 때 이뤄진 지도부 교체는 파벌을 바꿔 유사정권 교체와 같은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식이었던 데 반해, 2000년대 들어 이뤄진 지도부 교체는 주류파 내부에서 국민적 인기에 편승해 정해지는 방식이 됐다.”고 진단한다. 헌법개정, 집단적 자위권, 교육기본법 등 국민생활과 별 관련 없는 국가정체성 문제에만 매몰돼 버렸고, 결국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다는 해석이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도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92102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