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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 교수](정동칼럼) 윤창중의 배신, 공무원의 소신 (경향신문 2013.5.17)

GSISlJune 12, 2013l Hit 3309


[정동칼럼]윤창중의 배신, 공무원의 소신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은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가리기도 한다. 그가 드러낸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은 소위 “갑을관계의 동물적 모습”이다. 갑으로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윤창중은 그 지위를 이용해 주미대사관 인턴 여성인 을에게 폭력을 가하고, 을을 성적 충족의 대상으로 막 대했다. 이는 그야말로 비인간적, 즉 동물적 모습을 띤 갑을관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물적 갑을관계는 권력관계의 속성상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그 정도와 빈도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가 대선과정에서 성폭력을 4대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홍보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갑을관계가 심각한 대한민국의 추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윤창중이 가려버린 또 다른 대한민국의 추악한 모습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갑을관계의 탐욕적 모습”이다. 남양유업의 이른바 “밀어내기”라는 자사상품의 강매 관행으로 드러난 갑을관계의 탐욕적 모습이 윤창중 사태로 인해 언론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이다. 물론 남양유업 사태는 윤창중 사태가 식어가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만 불공정 관행을 척결할 수 있는 강한 모멘텀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갑을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그가 무리하여 인사를 단행한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의 묘한 동학이다. 이 갑을관계의 동학이 중요한 이유는 윤창중 사태가 가뜩이나 경직된 갑을관계를 더더욱 경직시켜 정부를 과도하게 신중한 “복지부동의 정부”로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갑을관계의 묘한 동학이란 무엇일까?

박 대통령의 취임 후 고위 관료들 인사는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무리한 인사였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경우는 그의 과거 글과 행적 때문에 가장 하지 말았어야 할 인사의 대표적 사례였고, 그 이후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른바 보수언론에서조차 자격 및 자질에 오점이 있다고 여겨지는 상당수 인물들이 주요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러한 인사를 한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사로 인해 형성되는 박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 사이의 갑을관계가 매우 경직된 군신관계와 같은 관계가 된다는 데에 있다. 무리하여 갑이 을을 보호하고 끝까지 책임지게 되면 인지상정상 을은 갑에 대해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충성심을 갖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겹쳐지면서 고위 관료에게 “눈치”가 “소신”과 “능력”에 앞서고, 과도한 “신중함”이 개혁적 “결단”에 앞설 가능성이 크다. 또 사고를 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갑을관계에서 볼 때 한·미 정상회담 중의 윤창중의 추태는 박 대통령에게 충격적인 “배신”이 아닐 수 없다. 10·26 사태 이후 아버지를 모시던 수많은 군상들이 배신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윤창중의 배신은 갑을관계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로 그 배신감을 토로하였고 국무회의에서 윤창중 사태를 계기로 “청와대는 물론 공직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공직사회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나 복지, 대북정책 등에 관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명박 정부에 비해 상당히 가운데로 이동했다. 이러한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움츠러들면 안된다. 과감한 개혁과 결단이 필요하다. 공직사회의 기강이 대통령의 눈치만 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경직된 정부 내의 갑을관계가 윤창중이라는 인물 하나로 정권 초부터 복지부동의 정부를 만들까 우려된다. 사실 대통령 및 고위관료의 진정한 갑은 국민이고 그들이 을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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